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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자전거찾으러 경찰서에서 조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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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유학했을 때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자전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고 통학도 하고 볼일도 보러 여기저기 쏘다니던 시절.
그날도 츠루하시에서 쇼핑이나 할까 하고 역주변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쇼핑하러 갔다.
츠루하시라는 지역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찍이 일본에 넘어오면서 정착을 하며  생긴 동네이다.
지금은  재일교포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어느 정도 일본 사회에서도 힘을 갖고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착 초반만 해도  일본에서의 차별로 인해 굉장히 힘들게 삶을 이어갔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이건 첨 가서  정착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련이 있을 거라는 것은 직접경험하지않고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일본과 우리나라의 역사적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그 어느 나라보다도 힘들었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임에는 틀림없다.
약국에서 한국 사람들에게는 약도 팔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란 적도 있었다.
어쨌든  정착 초반에 그리 고생하신 분들의 덕이랄까  또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탓이랄까
내가 유학했던 90년대 후반에는  그러한 차별은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던 유학 생활을 보냈던 덕분에  수많은 추억들이  지금에도 나의 기억 속에서 맴돌고 있다.
그중 하나가  경찰서에 간 일이다.
한국에서는 경찰서 근처에도 안 가보고 살았는데,  일본에서는 두세 번 정도는 경찰서 문턱을 넘었었다.
그렇다고 무슨 범죄자 같은 나쁜 일로 경험한건 아니었다 ㅎㅎ
우선 첫 번째 에피소드는  츠루하시에서 시작되었다.   

츠루하시에는  한국 김치나 한국에서 바로 넘어온 식품류 등을 살 수 있는 조선이치바 란 곳이 있다.  

그래서 김치도 살 겸 들렀던 것.  조선이치바에 가면  귀에 들려오는말은  거의 한국어라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헤깔리는 곳이다.
나같이 김치라든가 한국 음식 없이는 못 사는 분들이라면 천국 같은 곳일지도...
여하튼 쇼핑을 끝내고 자전거가 있는 곳으로 와보니 이게 웬일인가  산지 얼마 안 돼 반짝반짝 빛나다 못해 
광채가 나던 나의 애마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ㅠㅠ
이리저리 근 한 시간을 헤매다 포기하고 와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비상금을 털어서 다시 자전거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를 가려면 자전거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 자전거와 인연이 되어 지내던 중  몇주가 지나서 한 통의 전화가 학교 교무실로 걸려왔다.
생면부지의 일본 땅에 유학간지 얼마 안 되어  아는 사람 하나 없었던 나에게  그 누군가로부터 나를 찾는 전화가 오다니....  

자전거

불안 반 설렘 반  전화를 받아보니  수화기 저 넘어에서 상냥하게  이 상 데쇼우까? 하는 굵고 중후한 목소리의 남자의 목소리. 설렘도 잠시 그 상대편은 경찰관이었다~~~  

잃어버린 내 자전거가 경찰서에 있다고
찾으러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헐.....
자전거가 다시 나타난 것도 신기하지만, 자전거를 찾으러 오라고 경찰관이 전화까지?   

내가 자가용을 잃어버렸나? 아닌데 싸디싼 자전거인데  그때 기억으로 8천엥 정도 (우리 돈으로는 8만원 좀 넘겠네) 밖에 안되는 물건인데?
의아해하며  어쨌든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  막상  찾으러 가자니  귀찮고  아직 지리에 익숙지않아
어디쯤인지도 낯설고 해서 잊어 버린 채 내 평상시처럼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2주쯤 돼서 그 경찰관으로부터  또 전화가 와서 안 찾아가시냐고 ..  헐......
하는 수 없이  담날  하루 쉬는 날이기도 해서  아침 일찍부터 택시를 잡아타고 그  이름만 알려준 경찰서로 향하게 되었다.  

한참 멍하니 택시 밖의 정경을  구경하며 가던 중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이상한 느낌은 바로 택시의 미터 요금이 나에게 인식되면서였다.

어 어 어  택시요금이 벌써 8천 엔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이 택시요금이 비싸다 해서 8천엔을 넘을정도이면 꽤  거리가 있을터, 그때서야 그 경찰서가 상당히 먼곳에 위치해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8천백엥,  8천3백엥. 8천5백엥........... 아 아  아직도 도착을 안 한다...  9천엥....... 아아  그다음부턴 생각하기도 싫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ㅠㅠㅠ 내가 샀던 자전거 값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택시 미터기를 뚫어지게  째려보기를 수 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경찰서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산 비용보다 비싼 택시비를 써야 했지만  기분 나쁨도 잠시   반갑게 맞아주는 경찰관의 인사에  여기에 온 목적을 상기시키면서 경찰서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화로 애타게 나를 찾던 그 경찰관을 만나게 되었다.

역시  일본 사람 특유의 끝도 모를 친절한 인사와 함께  안으로 안내되었다.  

어서 내 자전거를 돌려주십쇼 하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이 하는 대답과 함께  의자를 내어왔다.

불편하고 딱딱한 허름한 의자에 자연스럽게 착석을 하고  다시 한번  내 자전거?....  하고 입을 떼려고 한순간  나에게 누리틱틱한 몇 장의 종이를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 종이를 들여다보니  그건 바로 원고지였다.
이젠 단어도 생소한 원고지.  예전 초등학교 때에 글짓기 할 때나 봤던 그 원고지였다.
이걸 뭐 하려고? 하는  나의 의아해함을 눈치챘는지 바로 얘기를 시작했다.
자전거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물음에 답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날짜, 주차해놓았던 자전거의 자세한 위치. 자전거를 거기에 주차한 이유, 무슨일 때문에 왔는지.. 얼마나 있다가 자전거주차한 곳으로 되돌아왔는지 등등 그 외에 몇 가지는 더 있었다. 
물어보는 것도 많아 당황했지만, 이 모든 사실을  일본어로 작성하라는 것 !  

자전거를 잃어버린 그 시점은 내가 일본에 간지 한두 달도 안되는 시기라서  일본어로 문장을, 그것도 많은 문장을 작성하라는 것은 무리였다.
급당황한 나는  문법에도 맞지 않는 일본어와 몸짓 손짓을 해가며  그 뜻을 전했다.
그러자 그 친절하디 친절한 일본 경찰관은  약간 난해한 표정을 짓더니, 바로 웃으며 걱정하지 마시라고  자기가 나한테 들은 자전거를 잃어버린 경위를 상세히 적어줄 테니 그대로 따라 쓰기만 하면 된다고  ㅎㅎㅎ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자전거를 잃어버린 경위를 상세히 얘기했고 경찰관은  열심히 받아 적어갔다.
한 이십분 대화를 나눈 후에 드디어  내가 따라 쓸 차례가 되었다. 

좀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이제 겨우 일본어 학교에서 단어나 외우고 있던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따라 쓰기를  3-40여 분 썼던것같다.
써 내려가던 나의 머리속에는  내가 왜  이런 경위서를 써야 하지? 하는 질문이 가시질 않았다.
한국에서 20여 년 이상을 살았던 나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본스러운 절차였다.
자가용을 도난당한 것도 아니고 겨우 자전거 하나 가지고 이렇듯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건지, 경찰서까지 나서서 일처리를 해야 되는 건지, 암튼 우리랑은 전혀 다른 일본의 행정절차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찰서에 도착한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가  지나버렸다.

드디어  작성을 다하고 학교 선생님보다도 더 꼼꼼한 경찰관의 오케이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내 자전거가 있는 창고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보관돼있던 자전거랑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나에게 인계되었다.  

이렇게 어렵게 인수인계식을 한 후에 내 손에 안겨진 자전거이기에  아주 기뻐야 할 순간에  나는 자전거를 받자마자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  

자전거

그렇다!  자전거를 찾으러 올 때는 편하게 택시를 타고 왔다.  

그것도 머나먼 이곳까지 편하게. 자전거가 되찾은 순간  나는  저 머나먼 곳에 있는 나의 숙소가 떠올랐다.

헐~~~~~  이걸 끌고  숙소까지?  택시요금이 자전거를 구입한 비용보다도 많이 나온 거리다.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먼 거리도 문제지만  어디가 어디인지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던 초짜 유학생에게는 너무너무 막막한 현실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자전거를 받아든후 무작정 길을 나섰다. 

그리고 무지하게 헤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정표를 봐가며,  도중에 잠깐식 물어가며 나는  겨우  숙소로 돌아올수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의 아픈 감각보다도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어 기뻤다.

그날 밤에 돼서야! 내가 자전거를 찾아 나선 것은  이른 오전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하늘을 보니 총총총  별들이 아름다운 밤을 수놓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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